그녀는 병아리가 무섭다고 했다.


 새로 배치된 FM 아가씨와 나눈 대화.

 이러쿵 저러쿵 하다가


 옌: "난 세상에서 벌이 젤루다 무서워. 벌 따위 사라져야해."

 그녀: "어머, 그 덩치에 벌이 무서워? 웃겨. 푸흡"

 옌: "당신, 목부러지고 싶어?!"

 그녀: "즐, 닥치삼. 여튼, 난 병아리가 무셔. 근처에도 못가겠어."

 옌: "당신, 젊심 때 삼계탕 먹었잖아!"

 그녀: "그건 닭이잖아!"

 옌: "....그게 뭐."


 잠시간의 투닥거림 이후에 그녀가 말해준 사연은 이랬다.


 병아리와 그녀의 첫 만남은 내 예상대로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이루어졌다.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당시 상큼하고 앙증맞은 초등학생이었던 그녀는[옌: "당신, 고생 정말 많이 한 모양이네."  그녀: "닥치랬지!"] 교문 앞에서 거금 100원에 판매 중이던 노랗고 작은 아이들을 보게 되었다. 삐약 삐약 거리는 그 작은 아이들이 어찌나 이쁘던지,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큰 맘 먹고 한 녀석을 골라 품에 안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녀: "신기하게도 내가 딱 안으니까 막 삐약 삐약 울던 것이 조용히 하더라니까."

 옌: "무서웠겠지. 살긴 살아야겠고. 더 떠들면 목이 꺾..... 뭘 던지는거야 이 여자야!"

 그녀: "너 내가 맘에 들어?! 왜 자꾸 들이대, 앙?!"

 옌: "...잘못했어. 계속 얘기해. 닥치고 있을게."


 그녀는 정성을 다해 삐약이[가명. 조류]를 길렀다. 행여 채식만 하면 삐뚤어질까, 낚시를 다니시던 아버지께 갖은 애교를 떨어 지렁이를 얻어내 먹이기도 하고 볕이 좋은 날 마당에 내놓고 뛰놀게도 하는 등 그녀 인생의 다시없을 순수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마당 한켠에 주저앉아 '환율이 좋지 않아. 증시도 나쁘네. 재테크는 어떻게 하라고' 따위를 중얼거리고 있는 그녀에게 삐약이가 다가와 "저는 사실 옥황상제를 모시던 선녀였사온데.." .....는 아니고.

 그저 일상대로 피곤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단란한 시간을 보낸 그녀.

 왠일인지 삐약이가 기운도 없어 보이고 지렁이까지 거부하는 모습이 불안하게 느껴졌단다.

 그래서 그녀는 부모님 몰래 삐약이를 자기 방으로 끌어들였다. 삐약이를 방으로 데려와 함께 자기로 결정했다.

 한 방에 같이 누워보길 얼마나 기다렸던가!! 오직 이 밤을 기대하며

 삐약이를 보듬고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다 잠이 든 그녀. 그 밤은 몹시나 포근했다지.


 그리고 아침. 밥 먹고 학교 가란 말에 부스스하게 일어난 그녀는 잠시간 눈을 부비고 조금이나마 활기를 되찾은 삐약이를 기대하며 녀석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곳에 삐약이라고 불리웠던, 지렁이에 환장하던, 병아리였던, 납작 눌린 고기덩어리[..]가 있었다.


 그렇게 사랑하던 삐약이를 자기 손으로, 아니 자기 몸으로[..] 죽였다는 사실이 주는 정신적 고통.

 '지 잠버릇 생각안하는 어리석은 것이 엄한 생명 골로 보내놓고 울긴 왜 울어' 라시며 발도제 켄신의 그것을 능가하는 회초리질을 보여주신 어머니로 인한 육체적 고통.

 그날 그녀는 개근상을 포기해야 했단다.




 그녀: "그때, 그 모습땜에 병아리가 무서워졌어."

 옌: "병아리들이 널 무서워해야 하는거 아냐?"

 그녀: "시끄럽고. 여튼 그래. 지금도 생각나.[왠지 몸을 떤다]"

 옌: "...아무리 생각해봐도 병아리가 무서운 이유로는 좀 그런데?"

 그녀: "고장 신고 너한테 몰아버리는 수가 있어."

 옌: "정 대리님한테 일러버린다. 해봐."

 그녀: ".... 사내 새끼가..."

 옌: "......"



 한 줄 요약 : 난 벌이 무섭다.[..]


 

by 페이옌 | 2006/08/05 09:13 | 일반 싸가지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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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MIRACLE GARDEN at 2006/08/07 00:39

제목 : 메추라기 트라우마
꽤 옛날 이야기 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3학년인가. 아무튼 그 무렵이었을거예요. 병아리 세 마리를 구입했었습니다. 와. 이틀동안 안 죽고 살아있네요! 감동에 겨웠던 저는 병아리 세마리를 마당에 내놓기로 결심합니다. 다음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저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 ........ 가끔 집에서 널어놓은 굴비등을 물어가던 고양이가 날개죽지만 남은 병아리(피뚝뚝)을 물고 도망가는 광경을요 ㅠ_ㅠ. 방안에만 .....more

Commented by 외톨이혹성 at 2006/08/05 17:44
꽥!!!! ㅜ ㅜ 트라우마가 대단했겠는데요...;; 생각만해도 윽;;;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를 한번 불러주시지 그러셨어요;;;
Commented by 혜란 at 2006/08/06 21:09
...난 '똑같은'이유로 메추라기를 참 싫어라 하지.
꿩도 싫어
메추리알이 들어간 장조림 조차도 거부하고 싶더라
.........

근데 나만 그런 경험을 한게 아니라는게 엄청나게 위안이 되는걸(...
Commented by 페이옌 at 2006/08/07 08:07
외톨이혹성/그랬다간 보디블로를 맞았겠지요[..] 강한 그녀라서요.
란/..위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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